[텃밭일기] 새벽의 참외와 애벌레,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생각

오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됐다. 아직 해가 들기 전,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참외, 당고추, 야콘을 심었다. 땅을 고르고 모종을 심는 단순한 반복 속에서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박장로 댁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하웅태 형제, 이정호 집사, 아내와 함께 농장으로 향했다. 양파밭의 잡초를 일일이 손으로 뽑고, 열무밭은 예초기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양배추밭에서는 본격적인 애벌레 수색전이 시작됐다. 배추잎 사이를 샅샅이 뒤져 배추흰나비 애벌레 137마리를 손으로 잡았다. 끝없이 나오는 애벌레들을 보며, 자연은 늘 빈틈을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박장로 댁에서 따뜻하게 대접받았다. 함께 땀 흘린 사람들과 나누는 밥은 그 어떤 고급 음식보다 깊은 맛이 있다. 식사 후, 양배추밭에 농약을 뿌리기로 하고 오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농약을 맞은 애벌레는 얼마나 버틸까?’
그래서 잡은 애벌레 중 하나를 따로 통에 담고, 농약을 뿌린 뒤 죽는 시간을 영상으로 찍어봤다. 작고 연약한 몸이 버둥거리다 점점 느려지고, 결국 멈추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분. 그 장면을 지켜보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는 양배추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애벌레를 없애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도 일방적인 죽음일 것이다. 양배추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뿌리는 농약 역시 또 하나의 공격일 수도 있다. 생명과 생명이 부딪히는 현장에 인간이 개입하면서, 어느 쪽에 ‘정당함’을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농사일은 단지 땅을 일구는 게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땀보다 생각이 더 오래 남는 날이었다. 농상 일이 힘은 들지만 그것을 업으로 하는 박장로 내외가 힘들 것을 생각하면 틈이 날 때마다 돕고 싶다.

배추흰나비 애벌레 죽는 영상